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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소식'에는 해뜨는집의 소소한 일상과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해뜨는집이야기'는 1995년부터 월간 [함께하는 세상]에 연재한 글입니다.
'이야기장터'에서는 해뜨는집과 관련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기사모음'에는 여러 매체를 통해 비춰진 해뜨는집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행스케치'는 해뜨는집 가족의 여행기록입니다.
나에게 포항은...

꿈결처럼 존재하는 곳이란다.
내게 있어 포항은...

1990년 7월 포항에 있는 선린애육원 보육사로 들어가 아이들과 2년 6개월을 함께 살았단다.
환호 앞 바다 언덕배기 위에 높다랗게 솟아있는 빨간벽돌 3층 건물.
파도소리에 잠을 깨고, 파도소리에 잠이 들던 곳.
지금은 바닷가에 너무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어서 해안선이 보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운동장에서 내려다보면 바닷가 해안선이 깨끗하게 그려져 있는게 보였다.

새벽 5시도 되기전에 잠을 깨면 간단하게 묵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담당한 10여명의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아침식사 식판에 반찬을 담아 높다랗게 쌓아둔다.
그 시간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있단다.

6시가 되면 다 함께 운동장 한켠에 모여 조회를 한다.
아이들 대표의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고, 
누군가의 대표기도가 있고, 원장님의 일장훈시가 이어지곤 했지.
마지막으로 다 함께 찬송가를 합창하고나면 우루루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한다.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식판에 밥과 국을 받아 식사를 하는 동안
보육사들은 설거지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내놓는 식판을 밀리지 않게 재빨리 정리해서 설거치 통에 담고,
자동세척기계가 되어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보육사들의 식사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다음에나 가능하단다.

오전 9시가 되어 방으로 돌아오면 어찌나 졸음이 밀려오는지 가끔씩 잠에 빠져들기도 했는데
꼭 그런 날이면 재수없게 원장님께서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하는 일이 있곤 했지.
우리 보육사들은 "귀신이다~" 하곤 했단다.

나는 세번이나 담당하는 아이들이 바뀌어서 매번 참 힘들었다.
처음엔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아이들 13명을 돌보았다.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 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나...

6개월이 지나 중,고,대학생 여자아이들을 맡았지.
그 애들하고 생활할 땐 정말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했단다.
큰 여학생들은 나를 "보모요!" 하고 불렀지.
그런데 '엄마'라는 호칭을 쓰고 싶었나 봐.
장난스럽게 "엄마요!" 할 때가 많았거든.
그 애들하고 지내면서 나는 내 방을 찻집으로 꾸몄지.
커피, 율무, 칡차, 생강차 등 정말 다양한 종류의 차들을 갖추어놓고 아무때나 들어와서 끓여마시도록 했다.
여자 아이들 뿐 아니라 남학생들까지 내 방을 너무 자주 들락거려 눈총을 좀 받았지.

그러다 6개월 후 이번에는 중,고,대학생 남자아이들을 맡게 되었단다.
그땐 집이 발칵 뒤집혔단다.
보육원이 생긴 이래 처녀 보육사가 다 큰 남자아이들을 맡은 예가 없었기 때문이었지.
그렇지만 "가출병 걸린 애들 한 번 잘 다스려서 사람 맹글어 봐라!" 시는 원장 할배의 고집을 어찌하지 못해 수용했단다.
큰 남자애들 맡으면서 생활도 남자들만 생활하는 2층에서 해야 했고 처음엔 좀 불편했단다.
불편하긴 나보다 애들이 더 했지.
처음 며칠은 빨래통에 속옷을 내놓는 놈이 없는거야. ㅋㅋㅋ

1992년 12월에 그 곳을 그만 두고 나올 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어 있었다.
"나 아파!" 하고 떠들어도 아무도 믿지 않았지.
마지막 1년간의 일기장은 보육사 생활을 그만둔 후 아예 없애버렸단다.
매일 매일 숨죽여 울면서 끄적였던 그 기록들을 볼 때마다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내 생에 가장 맑고 깨끗하게, 진짜 투명하게 살았던 시절이었다.
'순수' 그 자체이고 싶었지.
그 욕구가 자꾸만 상승하면서 결국 내 목을 옭아맨 꼴이 되었단다.
사람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존재일진데 불가능한 걸 추구했으니까...
내 우울증의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바다...
참 많이 거닐었지.
마른 모래밭을 맨발로 걸으며 마음은 수평선 너머로, 아니 다른 차원의 세상을 그리워하기도 했지.
태풍으로 완전히 뒤집어져 요동치는 바다와도 함께 했단다.

죽겠다고 비바람 몰아치는 거친 한겨울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어린 머슴애를 끄집어내 놓고 통곡을 하던 날.
그날이 하필 12월 25일이다.
흠뻑 젖어 돌아온 집엔 손님들로 북적대고...
그렇게 외로웠다.

참 오랜만이다.
오늘 포항 사진 보면서 갑자기 아슴한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마치 내가 다시 그곳에 있는 듯한...
시간이 되돌려진 듯한...

우리 친구들이 머문 그곳 정경들이 너무 낯이 익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간 근교 바닷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 감지되는 이 미세한 흔들림이 금새 멈출 것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동기모임 카페에 쓴 글)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9-08-28(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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