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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산그림자 6

산을 내려와서 간간이 그가 생각나긴 했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고, 예비고사도 20점 정도 까먹는 수준으로 별로 억울할 것 없이 치러냈다.
세군데까지 원서를 낼 수 있었지만 나는 한군데만 냈고, 무사히 합격했다.
입학하기 전의 막연한 기대감들은 대학 생활 시작과 동시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뭔가 의미를 찾는답시고 꽤나 피곤하게 자신을 들볶아댄 듯 하다.
하지만 대학생활 자체에서도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가끔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고, 오히려 만나서 확실하게 실망하게 될까봐 겁났다.
산에서, 일상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서 잠시 만난 사람으로 그냥 두는게 훨씬 안전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학생회관 식당에서 써클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나서 나오던 참이었다.
별 의미없는 농담들로 시끌벅적했고, 모처럼 나도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였다.
얼핏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는게 보였다.
별로 시선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계속 따라왔다.
몇걸음을 가다 갑자기 누군지 생각이 났다.
산에서 만난 내 또래의 남자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써클 일행들은 힐껏 쳐다보면서 먼저 학생회관 식당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선 채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 남자를 통해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 중 둘은 나와 같은 대학이었고, 둘은 각기 다른 대학이었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갔다고 했다.
어느 대학인지는 모른다고... 아니 더 정확히는 대학에 합격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남자는 오히려 내게서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뭔가 서운한 것도 같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좀 혼란스런 기분이었다.

며칠간 불쑥 불쑥 예고없이 그가 떠오르긴 했지만 나는 내 안에서 더 이상 그에 대한 생각들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단속을 했다.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확신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산에서의 그 느낌마저 사라져버릴거라고...
좀 괜찮아보이는 사람이 가까이에서 알게 되면서 시시해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는 그 역시 다시 만나지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고, 이젠 그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산그림자가 내려앉은 그 저녁 어스럼의 불내음을 맡곤 한다.
가슴이 시린듯도 하고, 실체도 없는 안타까운 느낌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6-06-16(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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