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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산그림자 5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으로 쏟아져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또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꿈인가 싶다가 완전히 잠이 깼다.
"10시에 기념예배 드리거든요... 그전에 한번은 더 연습해야 한다고... 식사하러도 안나오셔서... 제비뽑기 했는데 내가 걸렸어요."
그는 어색한지 자꾸 뒤통수를 만졌다.
"몇시죠?"
"9시 10분이네요."
그가 팔목을 들어올려 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금방 갈께요. 어디로..."
"밖에서 기다릴께요"
그가 나간 다음에 급하게 물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새벽종 소리가 울리고 나서도 한참 지나 동이 터올 때쯤 잠이 든 것 같았다.
형광등도 켜진 상태였다.
원장이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었는데...
손거울을 보니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다.
피부는 속이 비칠것처럼 핼간 것이 꼭 채했을 때처럼 핏기가 없다.
어째 조금 어질어질한 느낌도 들고 한기도 느껴졌다.
감기가 오려나... 아프면 안돼는데...

현관의 계단을 내려오는데 몸이 휘청했다.
화단 앞에서 기다리던 그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아니에요."
그가 나를 잡기라도 할까봐 나는 지레 손사레를 쳤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고,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늦게 잤거든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몇번 모인적이 있던 방에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얽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나눠 마시고 노래를 시작했다.
기운이 없어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예배시간이 다 되어서 모두 기도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외부손님도 좀 있었다.
그래도 스무명이 될까 싶었다.
순서가 되어 같이 앞으로 나가서 찬양을 했다.
우리의 특송이 끝나자 사람들이 아멘! 하고 화답을 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며 이젠 그들과 따로 얽힐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홀가분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나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적당하게 온기가 남아있어서 좋았다.

다시 잠이 깼을 때는 벌써 깜깜해져 있었다.
한기는 좀 가신듯했고, 몸도 한결 가뿐해졌다.
세수라도 할 양으로 방문을 열고 나오자 문앞에 음식이 차려진 쟁반이 놓여있었다.
누굴까 싶다가 그만두어버렸다.
흰죽과 미역국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먹어치웠다.
빈 그릇을 어떻하나 하다가 내일 가져다 놓기로 하고 다시 책을 펼쳤다.
방바닥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가 또 아궁이를 지폈나 보다.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집중이 잘 되어서 국사를 끝내고 다른 과목으로 넘어갔다.
새벽종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은 늦게 일어나서 그냥 건너뛰고 일찍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빈그릇을 가져다 놓으며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도 그들도 마주치지 않았다.
암기과목을 이것 저것 왔다 갔다 하며 문제를 풀었다.
오늘 중으로 두 과목은 봐야 했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해가 질때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가 불을 지피고 있는 것 같았다.
바깥에서 나무가지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나는 아궁이로 갔다.
"몸은 좀 괜찮아요?"
"고마워요. 괜찮아요."
그가 다른 말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는 아궁이 앞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같이 일어섰다.
그러나 나는 식당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쪽을 향했다.
"식사하러 안가세요?"
"먼저 가세요."
나는 그가 다시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숲길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뭔가가 다시 가슴속으로 치밀어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되밀어넣었다.
내가 식당으로 갔을때 그들은 식사를 거의 다 마쳐가고 있었다.
나는 입구쪽에 그들을 등지고 앉았다.
나가면서 그들 중 하나가 식사 맛있게 하라고 인사를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그 패턴을 유지했다.
그러나 저녁마다 내방에 불을 지펴주는 그를 모른채 할 수는 없었고, 지금에 와서 내가 하겠다고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실 나는 한번도 불을 지펴본 적이 없다.
그와 대면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는 그가 온 기척이 느껴지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려서 나가곤 했다.
우리는 무의미한 이야기를 조금씩 주고받다가 헤어지곤 했다.
그는 식당으로, 나는 산책길로 향했다.
며칠사이 영어와 과학 과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을 대충은 건드릴 수 있었다.

이곳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히려 문제집을 풀기 전보다 더 햇갈리는 기분도 들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한번 훝어보았다는게 안도감을 주었다.
내일은 내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동안 불쑥 불쑥 나를 당황스럽게 하던 느낌들도 이젠 잠잠해진 것 같았다.
오늘은 그에게 인사를 해야할 것 같았다.
그냥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리면 두고 두고 찜찜할 것 같았다.

그가 온 기척이 들려서 밖으로 나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웃었다.
쓸쓸한 미소였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내뱉어버렸다.
이번에는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갈려구요..."
아무렇지도 않은척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안됐다.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양 자꾸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시험 잘 치세요."
그가 말했다.
"그쪽도요."
그가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불길로 눈을 주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아궁이만 들쑤시던 그가 화가 난 듯 쏘아붙였다.
"한번도 내 이름 불러주지 않았어요."
정말 그랬다.
미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끝까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어떤 것에 동요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간 낯선 들뜸에 시달린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후에 계속 연결될만한 일도 없었다.
내일 산을 내려가면 다시는 그를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이고, 그의 이름도 곧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5-09-15(13:29)
방    문 :76793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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