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터진 눈물[05.8.6]
지난 8월 6일에 다른 곳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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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얼마전 10일간 청계천 일대에서 빈곤체험을 하고 온 학생들의 보고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보고회를 위해 거의 매일 모여서 자료를 정리하고 토론을 하는 그들을 봐왔기에 두 딸내미까지 데리고 남편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청계천복원 이면에 가려진 쪽방거주자들과 노점상들의 비애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타워팰리스와 마주보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의 100여가구의 비날판자촌 주민들.
기가 막힌건 그들 모두가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행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거지요.
학생들은 쪽방체험, 노숙체험, 장애체험 등 각자가 체험한 부분을 차례로 보고하면서 나름대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쪽방에서 하루밤을 잔 여학생 둘은 무섭고 불편해서 밤새 한숨도 못잤다면서 자신들은 하루밤이니까 그저 하루 불편을 감수하는걸로 감당했지 이틀만 지속되어도 우울증에 걸릴것 같다고 했습니다.
노숙체험을 한 남학생들도 며칠이야 견디겠지만 너무 절망적일 것 같다고 말했지요.
그들이 표현하는 빈곤의 모습은 공동화장실, 샤워시설이 없는 곳, 불결하고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 등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겁니다.
그리 멀리 않는 지난 시간 나는 그와 비슷한 생활을 했었다는 것이.
대학에 다닐때까지 싱크대가 없는 부엌 한켠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바가지로 물을 받아 씻었고, 우리 5남매와 부모님이 다락방이 딸린 단칸방에서 살았다는 것을요.
가난했지만 우린 서로 사랑했고, 행복했고, 따스했습니다.
헌책방에서 구한 책들이 사방을 에워싼 우리집 다락방은 아주 특별해서 우리집을 아는 사람들의 기억속에도 특별하게 남아있었답니다.
허럼한 살림살이에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우리집은 우리 5남매의 친구들로 항상 박작댔고, 씽크대 없는 부엌 연탄아궁이는 손님 대접하느라 왠종일 전을 부쳐댔답니다.
우리 5남매는 시도때도 없이 기타를 치며 화음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를 즐겼고, 한껏 도취되어 신이 나서 목소리가 올라가면 엄마가 비자루를 거꾸로 들고서는 다락방 문을 열고 말리셨답니다.
"다리(남) 욕한다!" 이러시면서요.
우린 가난했지만 결코 빈곤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날인가 동생들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만약 우리에게 아주 큰 돈이 생기는 대신 지금처럼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걸 선택할까?" 물었지요.
우린 모두 돈을 포기하겠다는데 동의했고, 그순간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당시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공평하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가정에 돈 대신 화목을 주신것처럼요.
빈곤체험을 다 마칙고 와서 결론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냐고 또 물었습니다.
한 학생이 한참 생각하더니 "울분"이라고 대답하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지는 겁니다.
안도감이랄까, 위로받은 기분이랄까, 하여간 얘네들이 최소한 남의 가난을 훔치지는 않았구나 싶으면서...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울음은 더 터지고 참 민망해서 죽을뻔 했습니다.
우리집 딸내미들도 많이 놀랐을거에요.
저의 가난을 조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게 다는 아니라고...
일상의 불편함은 별거 아니었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자꾸 울음이 터지려고 해서 대충 말았는데 그들도 알겠지요.
내가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사회를 보던 학생이 마무리를 하면서 결코 체험만으로 끝내지 않겠다고, 지역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하는데 참 기뻤습니다.
아직까지 골이 땡깁니다.
울음을 참느라 너무 용을 썼나 봅니다.
도대체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울음이 통제가 안될 때가 많아집니다.
기가 빠져서 그런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