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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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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첫인상과 10년

1988년 1월 첫째주 수요일 그를 처음 보았다.
내가 보따리를 싸서 보육원으로 들어간 날이 1988년 1월 1일이고, 그의 팀이 보육원으로 자원봉사를 오는 요일이 수, 목요일이고, 우리는 아마 첫번째 수요일날 서로 인사를 나누었을 것이다.

팀원들 중 고참인 몇명의 남학생들을 원장이 소개시켜주었는데, 그들 모두가 다 너무 올바르다 못해 고지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커다란 검정 뿔테 안경을 낀 그는 좀 답답해 보였었고, 그들 중 가장 연장자인 그의 선배는 나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배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이들어 보였다.
다들 왜그리 착해빠졌는지...
당시 솔직한 기분은 참 재미없겠구나 쪽이었다.

우리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들 눈에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후에 들은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조합해보면, 모처럼 대화가 통하는 보육사를 만났다는 반가움과 쉽지 않은 일에 뛰어든 젊은 여성에 대해 무조건적인 우호감을 가졌다는 정도다.

나는 스물 여덟이었고, 그는 나보다 4년이 어렸다.
나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경험했고, 그는 휴학생으로 방위로 복무 중이었다.
까만 후배로만 보였지 10년이란 세월이 지나 함께 살게 될 상대로는 꿈도 꾸지 않았었다.
그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보육원에서 보육사와 자원봉사자로 만나 2년여를 서로 협력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어느날 술자리에서 그가 나를 선배로 불러주었다.
팀원들 중에는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언젠가 그에게 '누나'라고 불러보라고 했다가 면박만 당한적이 있다.

10년간 그의 팀원들과 나의 교류는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내가 보육원을 떠나 페스트푸드 쪽에 발을 담갔을때도 그들은 부산까지 나를 찾아와 주었고, 내가 다시 다른 지역의 보육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에도 찾아와 주었다.
긴 시간동안 서신을 주고 받은 친구들도 있다.
가족을 제외하고 그들만큼 나를 귀하게 여겨준 사람들이 또 있을까.
어느 때인가부터 나는 그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들이 새로 재건한 조직의 중심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서 그들을 만난 것은 정말이지 크나큰 행운이다.
그들은 내가 간절히 꿈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대안가정 엄마로 살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언제부터 나에게 존재했을까?
너무 익숙하고 편안해 차라리 피붙이같았는데...
"선배! 십년 후에 같이 일합시다!"라는 말을 들은지 10년만에 우리는 결혼이란 걸 했다.


 

 

이    름 :감자
날    짜 :2005-09-29(19:02)
방    문 :98359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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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헤숙 차가워 지는 11월의 겨울 입구에서 따스한 군 고구마랑 따끈한 감자를 품에 안고 가슴을 살짝 데워 봅니다.아름다운 사람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이라고 늘 아름다운 미소와 지혜를 머금고 나아가는 삶이 되시길 기도 합니다.   2006-11-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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