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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산그림자 1

단풍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이었을게다.
1980년 늦가을 대입 예비고사를 앞두고 문제집 몇권을 챙겨서 기도원을 찾았다.
재수생이긴 하지만, 학원 근처에도 못가보고,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로 소일하면서 책 껍데기도 못본채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아마 예비고사를 한달 앞둔 시점이었을거다.

옷가지와 책을 담은 가방 두개를 들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데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의 둥근 능선들 사이로 골짜기가 그림같이 펼쳐지면서 구수한 불내음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리고 뭔가 알수없는 설레임이 갑자기 느껴졌다.

기도원은 몹시 허술한 낡은 건물이었고, 숙사는 현대식 건물과 옛날 한옥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원장은 아파트식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의 한 방을 내주면서 간단한 규칙을 설명해주고 갔다.
왜 왔는지를 묻지 않아서 좋았다.
하긴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사연을 품고 왔을 것이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일테니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기도원을 향했다.
기도를 한다기 보다는 인사를 한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늦가을 산속의 저녁은 몹시 추웠다.
별 생각없이 갑자기 나선 길이라 겨울 외투를 챙겨오지 않은 나는 몇벌의 옷을 겹겹이 껴입어야만 했다.
산속은 밤도 일찍 오는 것 같았다.
아직 저녁식사 시간도 안되었는데 기도원 안은 캄캄했고, 은은한 조명이 겨우 형채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기는 했는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기도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치솟았다.
한참을 멍하게 그렇게 눈물만 흘리다 밖으로 나오자 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던것처럼 내 앞에 서 있었다.
식사를 하러가자고 했다.
별 생각이 없었지만 그냥 따라갔다.

식당으로 쓰는 건물은 가건물이라 그런지 더 허술했다.
씨락국에 보리쌀이 섞인 밥, 무깎두기와 김치가 반찬의 전부였다.
통 식욕이 없었는데 막상 숟가락질을 시작하자 희한하게 맛있게 먹어졌다.
식당에는 나 말고 몇 사람이 있었지만 서로 목례만 할 뿐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막 식사를 마쳐갈 무렵 밖이 소란스럽다 싶더니 내또래의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나도 그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식당을 들어서며 나를 발견한 그들이 갑자기 대화를 멈추었고, 나 역시 멈칫해서 숟가락질이 허둥거려졌으니까.

식사후 기도원 주변을 한바퀴 돌아볼 양으로 숲길이 난 쪽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원장이었다.
내가 돌아서자 그는 큰 소리로 멀리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제 곧 완전하게 어둠이 내려앉을 참이었다.
숲길을 따라 걷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숙사로 돌아와 이불을 깔고 누웠다.
추웠다.
방안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일러와 관계된 건 없었다.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좀 지나자 조금씩 온기가 느껴졌고, 졸음이 밀려왔다.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바람소리 같기도 했다.
방안에 냉기가 가신 듯하기도 하고, 잠들때 느꼈던 한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형광등 불빛에 눈이 적응하는 동안 나는 그대로 그렇게 누워있었다.
등으로 느껴지는 온기로 봐서 보일러가 가동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바깥에서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덩거런 방에서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람들 속에 부대끼는게 싫어서 사람을 피해 이곳으로 왔건만, 막상 혼자가 되자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하기만 했다.

기도원에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칠흙같은 어둠속을 더듬거리며 겨우 기도원까지 갔다.
기도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갑자기 설움이 밀여드는지, 이번에는 꺼이 꺼이 소리까지 내서 한참을 울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서러울 이유도 없고,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지 나는 매사가 서글프고 공허하기만 했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것이 자꾸 힘겨워지고, 그냥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한참을 소리내서 울고나자 가슴이 좀 시원해지는 듯 했다.
시야도 어둠에 익어서 기도원 내부도 좀 더 분명하게 보였다.
그때였다.
왼쪽 모서리 부분에서 무언가가 조금 움직이는게 보였다.
세상에... 사람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기도원을 나왔다.
깜깜한 길을 허둥거리며 내리달려 숙소까지 오면서 속은 듯한 느낌도 들고, 끔찍하기도 하고, 갑자기 뒤범벅이 되어 혼란스러웠다.

아마 나는 그날 밤 일기를 썼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수시로 날을 잡아 일기장을 불태워버리곤 했으니까.
그날 산에서의 첫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한참동안 잠못들어 애를 먹었을 것이고, 어쩌면 문제집을 펼쳐놓고 푸는 시늉을 했을지도 모르고, 아님 거기 머무는 동안의 일정을 짰을지도 모른다.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5-09-15(13:28)
방    문 :115214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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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아 전 읽어도 무슨내용 인지모르겠네요..
하지만 리플담니다..
  2006-10-17 (14:37)

 정민희 정말 재미있어요
ㅋ위에 리플단 님은 내용을 무슨내용인지 모르시나 보네요
정말 재미있어요 ^^
  2006-10-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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